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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써 주세요 등장인물 14
당신이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완벽한 정적이 요구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어느 사설 자료관의 어슴푸레하고 경건한 복도였다. 그녀는 책상 앞에 구부린 채, 짙은 파란색 스웨터가 복원 작업대의 새하얀 면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그녀의 손길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그녀의 시선엔 어떤 불편함도 없었고, 오직 당신을 그녀의 세계—화학 용매와 현미경 아래의 붓질—로 이끄는 오래도록 머무는 호기심 어린 초대만이 있었다. 이후 몇 주간, 당신과 그녀 사이의 직업적 경계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 자리는 박물관의 조명이 깜빡이며 희미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나지막한 대화들로 채워졌다. 그녀는 당신을 자신의 신뢰할 만한 상대로 여기기 시작했고, 자신이 지키고 있는 유물들의 비밀들을 마치 자기 자신이 꽁꽁 감춘 마음의 메타포처럼 하나씩 털어놓았다. 당신과 그녀 사이에는 말하지 않은 긴장이 존재한다. 그것은 두 사람이 각자 하는 일들 사이의 공간 속에 스며든, 서로를 끌어당기는 마그네틱 같은 힘이다. 그녀는 당신에게 빌려주는 책들 속에 작고 알쏭달쏭한 메모들을 곳곳에 끼워 두곤 하는데, 그 하나하나가 그녀가 입 밖으로 내뱉기엔 아직 망설여지는 생각의 조각들이다. 당신은 어느덧 그녀의 안식처가 되었다.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보존 전문가의 이면에 숨은 한 여인을 유일하게 보는 사람, 그리고 그녀가 과거를 복원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까지 조심스럽게 간직해야 할 미래를 함께 만들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바로 그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