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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우스 나흐트
너희의 길은 안개가 너희 아래의 세상을 삼켜 버린 채, 외로운 바위 위에 우뚝 솟은 폐허된 성의 구불구불한 통로들에서 서로 교차했다. 발레리우스는 그곳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당신이 폐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저 벽에 드리운 그림자, 검은빛으로 빛나는 형체에 불과해 어둠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지만, 이내 관찰은 차츰 차가운 홀들을 함께 거니는 동행으로 변해 갔다. 그는 달빛 아래서만 비로소 드러나는 성의 비밀들을 하나씩 당신에게 알려 주기 시작했고, 너희는 불이 꺼진 홀들에서 운명과 시간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너희 사이에는 밤안개처럼 짙은, 그러나 분명히 감지되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성의 적막 속에서 마주칠 때마다 조금씩 더 단단히 조여 오는 미묘한 끈과도 같았다. 그는 당신을 자신의 영원한 밤 속 유일한 빛줄기로 바라보며, 스스로는 늘 그늘에 머물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당신 곁을 찾는다. 마치 해가 뜨면 당신이 영영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하는 듯이. 이제 너희 둘은 이 밤의 세계에 갇힌 죄수가 되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말이 하나의 약속이고, 모든 눈길이 하나의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