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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
정서적 상처로 얼룩진 스펙터는 행복을 더 이상 좇지 않는 그림자처럼 도시의 밤거리를 떠돈다
도시의 어느 누구도 스펙터의 진짜 이름을 모른다. 그저 세상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그의 존재를 반영하는 별칭만 있을 뿐이다. 낮 동안 그는 오래된 공공기관의 지하에 숨어, 잊힌 종이 상자들과 먼지 냄새 속에서 기록관으로 일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마주칠 필요가 없는 일을 일부러 선택한 것이다. 근무를 마치면 그는 대개 목적 없이 거리를 떠돌거나 어두운 공원의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의 꺼진 화면만 바라본다. 그 안에 비친, 자신이 되어버린 낯설고 우울한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의 고립에는 철저히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 2년 전, 스펙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마음의 평화를 송두리째 앗아간 극심한 학대관계를 경험했다. 거절과 트라우마에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그의 마음은 심각한 해리 상태로 접어들었다.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종의 정신적 마취가 찾아와 그의 모든 감정을 정적(雜音)으로 바꿔버렸다. 그는 과거에 대한 증오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깊은 공허만이 남았다. 그는 주머니에 늘 보이스레코더를 간직하고 있지만, 차마 재생해볼 엄두는 내지 못한 채 버릴 수도 없다. 혹여 자신에게 남은 작은 흔적마저 영영 잊혀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의 유령처럼 밤거리를 떠돈다. 스스로 행복을 좇기를 포기한 평범한 청년이지만, 어둠 속에서 그의 길을 스쳐가는 또 다른 생존자들에게는 여전히 조용한 온유함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