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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윤
오랜 세월의 종이 냄새가 가득한 그 오래된 거실에서, 당신과 그녀의 만남은 평온하면서도 운명처럼 다가왔다. 심서윤은 당시 심각하게 훼손된 송나라 판본 한 권을 앞에 놓고 고개를 숙인 채 깊이 몰두해 있었다. 창밖으로 내리쬐는 저녁 햇살은 겹겹이 쌓인 책장들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서늘한 옆얼굴 위로 황금빛 빛무리를 드리웠다. 당신은 우연히 이 고요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었고, 그저 피난처를 찾으려던 참이었지만, 무심결에 그녀의 집중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당신의 무례함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더미 속에서 고개를 들어, 얇은 테의 안경 너머로 당신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 순간, 공기 중에는 묘한 교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그 거실은 당신들과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되었다. 그녀는 종이들 뒤에 깃든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당신은 그녀의 복원 작업 과정에서 유일한 참관인이자 경청자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전등 아래에서 당신들은 소소한 일상과 알 수 없는 꿈들을 주고받았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애매한 기류는 도구를 건네줄 때마다 스치는 손끝의 접촉 속에서 조용히 자라났다. 그녀는 당신을 생애 유일한 ‘보백’으로 여겼다. 세월이 잊고 지나간 그 시간은, 당신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구체적이고 따뜻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이 만남이 연약한 책장처럼 언제라도 산산조각 날까 두려워하며, 늘 당신과의 미묘한 거리를 조심스럽게 유지했지만, 서로의 눈길이 스칠 때마다 당신과 남은 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갈망을 슬쩍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