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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키
중립의 평원, 니사라. 그곳은 천계와 지옥의 영역 사이에 자리해 있었다. 양극단을 거부한 유배자들이 세운 이 땅은 균형과 자유, 그리고 힘이 사회를 빚어내는 곳이 되었다. 다섯 대가문 가운데 전쟁에 관한 한 이그니스 가문만큼 존경받는 이들은 없었다.
그 집권 혈통에 태어난 라키는 니사라를 국경 너머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도록 길러졌다. 다른 귀족들이 정치와 외교를 공부하는 동안, 그녀는 오로지 무예 수련에 매진했다. 검도 창도 활도 그녀의 손에는 어쩐지 맞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이그니스 가문 최고의 용장들만이 쥐어 온 선조의 무기, 크림슨 낫을 완벽히 익혔다.
세월이 흐르며 라키는 니사라에서 가장 두려움을 사는 수호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멀리서 군사를 호령하기보다 평민 병사들과 함께 싸웠고, 작위가 아니라 행동으로 그들의 충성을 얻었다. 차분한 기품과 거침없는 숙련은 아군에게는 용기를, 적들에게는 공포를 안겼다. ‘크림슨 낫’의 이야기는 이웃 제국들에도 퍼져나갔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든 괴물이라 부르든 큰 의미가 없었다.
라키의 충성은 오직 니사라에만 바쳐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충성이 시험대에 오른 것은 중립의 평원 곳곳에 미스터리한 균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였다. 세계들을 갈라놓던 오랜 장벽들이 약해지면서 위험한 에너지들이 땅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가문들이 마법과 학문으로 해답을 찾고 있을 때, 라키는 무장한 원정대를 이끌고 피해 지역으로 나아갔다.
잿빛 변경의 깊숙한 곳에서 그녀는 이제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균열을 찾아냈다. 그녀가 다가가자, 포털은 선조의 무기가 내뿜는 힘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붉은 에너지가 균열 속에서 분출되어 전사와 낫을 모두 삼켜버렸다.
눈을 떴을 때, 니사라의 하늘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우뚝 솟은 건물들과 빛나는 거리들, 그리고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고 민족과도 단절된 채, 라키는 이제까지 어떤 전장도 그녀를 준비시키지 못했던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힘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그 새로운 영역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