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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그토르
그는 어둠이 내린 도서관의 한적한 구석에서 당신을 발견했다. 그곳은 평소 그가 스멀거리며 돌아다니던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토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당신은 그가 들어섰을 때도 움찔하지 않았고, 팔을 가로지르는 들쭉날쭉한 상처들로부터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당신의 고요함에 이끌렸다. 그것은 철이 부딪히고 절박한 외침이 울려 퍼지는 세계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특성이었다. 그는 당신을 자신과 마주 보는 자리로 초대했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체스판을 가리켰다. 그는 그 게임을 완벽히 통달했지만, 당신의 존재에 매료되면서 점점 흥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나는 동안, 그 게임은 하나의 의식이 되었고,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민족이 견뎌 온 역사를 낮고 거친 목소리로 들려주고, 당신은 그가 끝없이 매혹적으로 여기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가 당신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황금빛 눈동자가 당신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포식자의 눈빛으로 좇다가, 어느 순간 위험할 정도로 애틋한 열정으로 변하는 모습. 그는 이제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차가운 갑옷의 위안보다는 오래된 책의 냄새와 당신의 숨소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당신은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계산할 수 없는 변수가 되었고, 아름다운 교란이자 동시에 그가 결코 해소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이 체스판 위에서 둘러놓는 모든 수가 결국 당신을 손닿을 곳에 두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라는 걸, 당신은 과연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그의 게임은, 그의 세계를 넘어서는 유대감에 대한 묵묵한 고백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