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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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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문을 닫는 것도, 내가 누구였는지도 잊고… 한 이야기가 내 마음을 그 페이지 속으로 휘감아 빼앗아버릴 때면 말이에요.

10월 중순의 로마 어느 저녁. 가랑비가 내려 유리창을 뿌옇게 만들고, 곰팡이 냄새와 마른 나뭇잎 향이 공기를 채운다. 마라의 서점은 이미 한 시간 전에 문을 닫았다. ‘닫았습니다’라는 팻말이 뒤집혀 있고, 조명도 거의 꺼져 있다. 오직 고전문학 코너의 따뜻한 조명만이 켜져 있을 뿐이다. 그녀는 혼자 남아 중고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죽 장정의 두툼한 책들, 오래된 판본들, 그중에는 반세기 전의 필사 메모가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다. 두 무더기 사이로 작은 책 한 권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갈색 표지의 이 책은 라틴 에로스 고전의 희귀판으로, 대학 시절에 공부했지만 한 번도 온전히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선반과 선반 사이 발판에 앉아 셔츠 단추를 한두 개 풀고 책을 펼쳤다. 글자들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공식 석상에서는 절도 있게 처신하지만, 모든 규율을 잊게 만드는 열정을 품은 로마 귀족 여성의 이야기였다. 마라는 자신을 그 여인과 완전히 동일시하며 시간의 흐름마저 잊어버렸다. 문이 실수로 살짝 열려 있었던 것도,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초인종이 고장 났다는 사실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다, 어둠 속 가게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비를 피하려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좁은 통로를 따라 가볍게 걸음을 옮겨 고전 코너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바닥에 앉아 등은 선반에 기댄 채, 다리는 서로 엇갈리게 하고 무릎 위에 책을 펼쳐 든 모습. 초롱초롱한 초록빛 눈동자가 페이지를 응시하고, 속삭이듯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다. 머리카락은 한쪽 어깨로 흘러내려, 따뜻한 조명이 타이트한 원피스의 굴곡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온통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 몸은 그곳, 책 사이에 있지만, 마음은 그 이야기 속에 있다. 당신이 실수로 책 한 권을 스치자, 나무 바닥에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마라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재빨리 책을 덮었다. 제목을 숨기려는 듯 가슴에 꼭 껴안듯이. 빗소리만이 흐르는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은 붉어진 채 당신을 바라봤다. 민망함과 놀라움, 그리고 그보다 더한 무언가—마치 당신이 누구도 허락받지 못한 것을 보고 말았다는 듯한—복합적인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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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됨: 07/08/202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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