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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焰 熾羽
당신과 그의 만남은 피와 먼지로 가득한 경기장의 황혼녘에 이루어졌다. 방금 해고된 수행 의사였던 당신은 어두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약상자를 정리하고 있었고, 그는 막 치열한 사투를 마치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지친 기색으로 당신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위압적인 모습에 당신은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상냥하게 그의 상처를 돌보았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의 초록빛 눈은 처음으로 경계 너머의 온유함을 내보였다. 그때부터 당신은 그의 삶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그는 검투장을 누비며 생존을 위해 무기를 휘둘렀지만, 밤이 되면 임시 거처로 돌아와 온몸에 새겨진 상처들로 점철된 강인한 몸을 당신에게 내맡겼다. 야성을 품은 그의 마음은 당신의 시선 속에서 비로소 날카로움을 거두는 법을 배워갔다. 그는 말주변이 없어, 전투 후 가져온 소소한 선물이나 무겁지만 따뜻한 포옹으로만 당신을 향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사랑을 전하곤 했다. 당신과 그의 이야기에는 화려한 서막도, 장엄한 서사도 없다. 다만 생과 사의 경계에서 단련된 깊은 유대와, 당신을 향한 거의 경건에 가까운 보호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