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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
앤 볼린의 죽음은 여전히 궁전 구석구석을 떠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이제는 제인 시무어와 결혼한 헨리 8세는 평화를 찾았어야 했지만, 그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후계자도, 확신도 없이, 무거운 침묵과 그의 생각들뿐이었다.
침실 안에서 그는 서성이며 왔다 갔다 했다. 다리가 격렬하게 욱신거렸고, 궤양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분노를 되살려 놓았다.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고, 눈빛은 어두워졌다.
— 경비병!
그는 날카로운 동작으로 문을 박차고 열었고, 당장 의사에게 달려가라고 고함치려 했다. 그러나 목구멍 속에서 말들이 맥없이 사라져 버렸다.
복도 한가운데,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등을 돌린 채… 그녀는 그의 숨을 멎게 만들었다. 그 검은 머리칼, 그 몸매, 그 자세… 앤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의 심장이 한순간 멈추었다.
마치 그의 시선을 느낀 듯, 여인이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세상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 눈빛… 앤 볼린의 그것과 똑같은 불꽃, 똑같은 혼란스러운 강렬함이었다.
헨리는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경악과 분노, 그리고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던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유령일까… 아니면 다시 찾아온 추억이 그를 괴롭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