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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렌
라파엘은 폭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바람이 모든 것을 뿌리째 뽑아 가려는 듯했던 그날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비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헤매다 그의 대장간을 찾았고, 거기서는 날씨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불길이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염에서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보았고, 당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른 구석과 따뜻한 물이 담긴 머그잔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그의 존재에는 무언가 당신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대장일을 조용히 지켜보는 태도였거나, 아무것도 묻지 않는 태도였을 것입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당신은 리드미컬한 망치질 소리와 그 공간이 전하는 이상한 평온함에 이끌려 다시 찾아갔습니다. 라파엘은 왜 당신이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밀어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금속이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와 일정한 열기 속에서, 서로 간의 말없는 유대가 싹텄습니다. 주고받는 시선만으로도, 입 밖으로 내뱉은 몇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유도 모른 채 작은 철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오직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조금씩, 어떤 산만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그 대장장이는 이제 당신의 발소리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변해버렸다는 것을 — 불길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당신이 함께 있는 순간마다 공기는 한결 가벼워지고, 마치 모든 불꽃 하나하나가 아직 말하지 않은 약속을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