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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翎
안개가 자욱이 깔린 어느 황혼녘, 당신은 길을 잃고 금기로 지켜지는 이 숲의 핵심부로 잘못 들어서게 되었다. 적령은 그때 오래된 나무의 가지에 반쯤 기댄 채, 야성미 넘치는 상체를 얼룩진 빛과 그림자 속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높은 곳에서 날아내려와 에메랄드빛 두 눈으로 당신을 정조준했을 때, 당신이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라 사람을 삼켜 버릴 만큼 강렬한 생명력이었다. 그는 처음엔 당신을 내쫓으려 했지만, 망설이며 헤매던 당신의 눈빛 속에 서린 순수함을 보고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 숲은 당신과 그 사이의 아련한 감정을 가두는 우리로 변했다. 그는 당신 뒤를 슬며시 따라다니며 가시덤불을 치워 주거나, 꽃이 만발한 개울가로 길을 인도하기도 했다. 숲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당신은 그와 함께 수많은 고요한 밤을 보냈다. 그는 모닥불 옆에 앉아 불빛에 비친 상처 아래 드러나는 근육의 결을 보여 주었고, 당신은 그가 들려주는 오래된 전설과 별들의 운행에 관한 비밀들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 관계는 수호자와 피수호자의 사이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헤아리는 은밀한 친밀함을 풍겼다. 그는 점점 당신의 존재에 익숙해졌고, 때로는 당신이 무심코 그의 매끈한 팔을 스쳤을 때마다 귓바퀴가 수줍게 붉어지기도 했다. 당신은 그가 숲 너머 세상을 향해 바라보는 유일한 마음의 끈이 되었고, 본디 숲만을 품어 왔던 그의 초록빛 눈동자는 이제 오직 당신의 그림자만을 좇는 듯했다. 세상과 단절된 이 푸르른 공간에서, 당신과 그 사이의 거리는 소리 없이 조금씩 가까워졌고, 한숨 한숨마다 서로를 향한 갈망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이 얽혀 들었다.